:: 프리즘 포토 갤러리 ::


제목: 사진의 정체성 논란
이름: 프리즘/김인준


등록일: 2007-12-07 21:26
조회수: 1416 / 추천수: 154





<사진은 사진이다>展

한국현대사진의 흐름 1980~2000
사진의 정체성 논란 <사진은 사진이다>展
  
글 | 진동선 (사진평론가·현대사진연구소장 sabids@hanmail.net)

  
돌이켜보면 1996년은 한국사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버팀목을 세우던 때였던 것 같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사회 확산과 정보통신의 혁명적 진화에 근거한 사회적 변화 양상은 이미 우리 사회를 포스트모던 시대보다 더 역동적으로 퓨전 문화로 이끌어 갔다. 디지털 사진이 점점 더 사진의 중심을 향하여 전진했으며, 때를 같이하여 한국사진도 이제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시장으로까지 연결하고자 하는 이전에 없었던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확실히 1996년은 21세기 새로운 문화 인프라를 향한 땅파기 작업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만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국사진에 놀라운 일이 한 가지 벌어졌다. 사진의 정체성 문제를 화두로 내건 <사진은 사진이다>展이 출현했던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자연스런 현대사진의 메타비평쯤으로 해석될 전시였으나 당시 한쪽에서는 매우 뜨악한,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전시로 비판받았던 전시였다. “사진은 사진이다”는 이른바 만드는 사진, 즉 메이킹 포토의 급속한 확산을 경계하면서 사진의 본질이 스트레이트 포토에 있음을 천명한 사진전이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만드는 사진이 사진의 본질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그릇된 사진의 모습이기 때문에 스트레이트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사진의 참된 모습은 무엇이고, 무엇이 사진다운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던 대항적 전시였다. 따라서 당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예견된 전시였고, 전시 막전 막후의 몇 가지 인과관계를 무시한다면 전시는 메이킹 포토의 급격한 확산과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했던 젊은이들을 향한 시의성 있는 전시였다. 그 점에서 전시는 아마도 한국현대사진에서 처음으로 사진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사진의 전통적 모습과 그 역사성을 통해서 사진의 본질과 우리 사진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이론적 토대를 갖춘 역사적 전시였다.

김석중, 철학자 배철영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을 의심받았던 전시

<사진은 사진이다>展은 1995년 강남 삼성동에 삼성포토갤러리가 문을 연지 1주년 기념전으로 1996년 3월 18일부터 4월 13일까지 개최된 전시다. 구성을 보면 “Portrait”, “Landscape”, “Human Interest”, “Still Life”로 나눠지고, 각 카테고리에 육명심, 이완교, 주명덕, 홍순태, 한정식 등, 총 38명이 4개의 카테고리로 찾아들어간 전시였다. 전시 진행은 조문호, 홍미선이 맡았고, 전체 컨셉과 참여 작가 및 참여 작품은 자문 위원이었던 홍순태, 육명심, 한정식이 이끌었다. 이들은 당시 한국사진의 이론적 리더였다. 각자 세 개의 꼭짓점을 하나씩 가진 정점의 사진가이자, 이론가이면서 교육자였던 이들 세 사람이 뜻을 합해 만든 전시였다. 따라서 작가 구성은 그들을 따르거나 지지하는 동료, 후학들이 근간을 이룬 전시였다. 그러나 전시는 결론적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한쪽으로부터는 지독한 냉소적인 시선을 받고 끝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전시가 사진의 본질을 새롭게 한, 한국사진의 전통적 스타일을 지키려 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의심받고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전시가 “사진은 사진이다”라는 쟁점을 통해서 전후 살롱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이 충돌했을 때처럼 하나의 선언처럼 사진의 정체성 문제를 거론했는데도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세 가지 관점의 기획 주체들의 논거

필자는 그 같은 이유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안으로 답하고자 한다. 첫째는 전시 주체들이 이전에 보여준 이중적 사진관(觀) 혹은 사진교육 때문이다. 둘째는 중심에서 밀려나는 전통,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셋째는 전시의도에 비해 초대 작가와 출품 작품들이 목표점에서 벗어난, 즉 선명성을 의심받을 만한 작품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전시도록에는 이 세 가지 사안을 아우를 수 있는 기획 주체들의 전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논거들이 있다.
  
“30 여개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사진학도나 무엇인가 의식을 가지고 사진을 하려는 아마추어 젊은 사진인들이 새롭고 현대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추상성이 강한 만드는 사진을 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무분별한 이러한 형식의 모방이나 확고한 가치관이나 사진 철학이 없이 형식에 얽매여 현대사진을 앞세워 취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앞서간다는 미국에서도 뉴 웨이브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사진 등 새로운 시각 분야로 장르가 분류되면서 시도를 하고 있으나 많은 사진가들이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 바로 이러한 위험스러운 시점에서 만드는 사진만이 예술성이 높고 현대사진의 시발점이라 생각하여 무분별하게 추종한다면 한국 사진계의 앞날은 암담할 것이다.”(홍순태, 도록 서문 <사진은 사진이다> 중에서)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신봉하는 순수사진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항상 도전과 응전을 통해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바로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 그 당시 화가들이 직면한 충격은 대단히 컸습니다. 역시 1960년대 텔레비전 시대의 등장으로 영화가 받은 타격은 아주 치명적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회화나 영화는 모두 버젓하게 살아남았고 오히려 앞으로 더 나아가서 역사적으로 진보한 발전적 결과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자못 큽니다. (중략) 사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순수사진이 당면한 과제는 우선 근본적으로 사진의 본질적인 특징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묻는 일입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기계적인 기록성이지요. 그런데 기계적 기록성이란 실은 단지 사진의 기능적인 속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넘어서 기계적 기록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학적인 인식과 사고의 시각을 투시해야 합니다.”(육명심, 도록 서문 <사진과 발견의 시각> 중에서)
  
“사진이 사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의 사진’일 때이다. 그러나 오늘의 실정에서 이 말은 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재현 장치로서의 사진의 기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고유한 특성이요, 존재 이유로서의 이 재현 기능은 역시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다. 1993년도에 있었던 ‘관점과 중재’나 이번의 ‘사진은 사진이다’는 이러한 사진 독자성에 대한 소중한 가치 인식의 실정이요, 주장으로서의 기획물이다. 이러한 기획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경고나 체제 유지 차원으로서의 고집이 아니라, 사진 자체에 대한 애정과 신뢰의 표시로서 인 것이다. 사진은 무엇인가의 사진이라고 하는 가장 원초적이며 가장 근원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그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하고 거기에서 자기실현을 만끽하자는 사진 의지인 것이다.”(한정식, 도록서문 <스트레이트 포토의 의미> 중에서)
  
차용부 이갑철, 아버지의 자유를 위하여, 1990
당위성과 선명성을 약화시킨 요소들

필자가 앞서 요약했던 비판적 시각의 세 가지 사안들과 위 세 사람의 기획 주체들이 논거한 “사진은 사진이다”의 관점들을 음미하면서 각 이유들에 대해서 파고들어 가보자. 첫 번째 이유로 들었던 것은 “기획 주체들의 이중적 사진론”이었다. 즉 전시 주체들이 아카데미에서 보였던 이중적 사진관 혹은 사진교육의 이율배반성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전시의 당위성을 가장 크게 위협했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전시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홍순태, 육명심, 한정식이 멀리 70년대부터 가까이 90년대 중반까지 이 땅의 사진이론을 주도하면서 학습시켰던 사진관(觀)과, 그들이 실시했던 교육의 내용과, 작가로서 실행적 태도에 이중성을 보였기 때문에 전시의도를 의심하고 당위성에 의문을 던졌다. 주지하다시피 세 사람은 출중한 외국어 능력, 사진을 보는 혜안, 그리고 뛰어난 시대적 감각으로 이 땅의 사진이론적 토대를 쌓았다. 아마도 그 시대를 건너왔던 사진가 중에서 이들로부터 학습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들은 사진이론의 견인차였고, 이 분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현대사진교육과 창작적 지도방법이 동떨어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저 서구 현대사진의 이론과 현란한 제 양식들을 교육시켰던 사람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러나 교육을 시키면서도 그것들의 문제점, 표현의 확장을 위해 수용할 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을 수 있는지를 아카데미 안에서, 혹은 저널이나 토론을 통해서 선보여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정보를 제공하기만 했지 문제점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 사진의 현란함에 유혹받았을 때 젊은 사진학도들이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아카데미 현장에서 서구 현대사진의 제 조류를 슬라이드를 통해서 교육시키면서 이런 양식들이 어떻게 사진의 본질을 해치는 것인지, 혹은 사진의 본질과 상충되는 것인지,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들과 마주칠 때 무엇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를 작가인 자신들의 몸을 통해서, 혹은 전시나 워크숍을 통해서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한 순간 젊은 세대들이 ‘반 사진적’이라는 메이킹 포토 앞에서 함몰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전의 사진이론을 이끌었던 전시 주체들의 책임도 상당했기에 뒤늦게 사진의 본질은 스트레이트 포토라고 소리치는 것은 비판의 빌미를 주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심에서 밀려난 정통,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비쳐졌다”는 것이다. 전시가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비쳐져서 냉소적인 눈초리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성에 기인한다. 그러니까 기획 주체들은 1988년 워커힐 미술관에서 개최된 <사진, 새 시좌>展 이전까지는 대학아카데미 주류였다. 또 이들은 사단(사협)의 주류이기도 했다. 상당 기간동안 이들이 아카데미와 사단 양쪽에서 주류였기 때문에 기득권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 도전받기 시작했다. 해외 유학파와 국내 젊은 작가들은 수평전을 통해서 도전한다. 도전의 형식은 이른바 만드는 사진, 즉 메이킹 포토로 나타났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전시도 아니고, 사진의 본질을 물었던 시의성 있는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위성을 의심받는 전시로 비쳐진 것이다. 기획주체들이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과 위상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진의 본질인 스트레이트 사진을 옹호하고, 한국사진의 전통적 뿌리인 리얼리즘 사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기획의도에 비해 초대 작가와 출품 작품들의 선명성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전시장에서 나타났다. 그러니까 전시를 통해 ‘사진은 사진이다’, 라고 하는 동어 반복적 토톨로지를 명제화 할 때는 대상과 목표의 선명성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무엇이 무엇이기 위해서는, 혹은 무엇이 무엇이 아니기 위해서는 지시성이 분명히 드러나야 목표했던 타겟으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시는 틀거리부터 맞지 않았다. ‘인물’, ‘풍경’, ‘인간관심’, ‘스틸 라이프’라는 카테고리는 메이킹 포토라는 예술적 표현성과 대척에 놓일 수 없었다. 그래서 출발부터 선명성이 드러나지 않는 모호함이 있었다. 그런데다가 예술의 형식은 예술의 형식으로 말해져야 하는데 상업사진까지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사진이다’라고 하는 세계 유래가 없는 토톨로지를 통해서 의미를 강화하고자 했을 때는 더욱 강력히 환기시킬 수 있는 지시체를 제시해야 했었다. 그런데도 참여한 작가들의 성향이나, 작품의 모습, 또 그것들이 놓여진 틀거리는 선명성을 드러내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의 목표점이 메이킹 포토였다면 처음부터 메이킹 포토와 유사한 작품들은 걸러냈어야 했다. 또한 전시가 이 땅에 메이킹 포토를 유행시킨 몇몇 젊은 리더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면 그들의 사진 철학, 사상 혹은 사진적 태도를 문제 삼아야 했고, 또 그들과 심정적으로 동조하거나 같은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던 작가들도 전시에서 배제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줄곧 수평전에 참여한 작가, 그쪽 주체들과 사진적 인식을 공유한 작가, 그리고 사진적 태도에 있어 순수사진을 고집하지 않은 탈장르적 작가들까지 초대했다는 점에서 전시는 처음부터 확실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했다.

최종인

한옥란, The Life of Flowers
디지털 시대, “사진은 사진이다”에 대한 또 다른 생각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사진은 사진이다>展을 돌아보면 당시 전시가 역사의 거울이 되고 있음을 본다. 디지털 사진이 범람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1996년 “사진은 사진이다”를 외쳤던 그날의 전시는 여전히 사진은 사진인가를, 혹은 여전히 사진은 사진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당시 전시 주체들이 이유야 어쨌든, 어떤 노림수를 가졌든, 힘을 합해 사진의 본질을 지키려 했던 노력은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디지털 사진이 사진의 주류로 떠오른 지금 이 순간 사진의 정체성 논쟁은 여전히 유효한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저항의 깃발은 누가 들어 올려야 하는가. 이제는 시대 자체가 달라서 어찌해 볼 수 없는가. 아니면 그때처럼 누군가가 나서서 ‘사진은 사진이다’, 라고 외쳐야 할까. 사진의 설자리가 없고, 점점 더 왜소해져가는 사진적 상황에서 1996년 “사진은 사진이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사진의 본질과 한국사진의 역사성을 생각하게 하고, 또 역사적 책무를 자문하게 한다. 만의 하나 아직도 역사적 책무가 있다면,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떠한 방법이 있는지, 어떻게 이율배반적이지 않고, 서로 어긋나지 않고, 이론적 근거와, 학습의 과정과, 실행적 태도를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진은 사진이다>展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

-추천하기     -목록보기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번호  글쓴이 제목 등록일 추천 조회
34
 서원교
가입인사 겸 송년 인사 드립니다!!  1 2007-12-31 158 1349
33
 snail
가입 인사올립니다.  1 2007-12-28 147 1353
32
 프리즘/김인준
비경으로 가득한 고래들의 고향, 울산 2007-12-27 131 1362
31
 프리즘/김인준
서해에서 해를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의 일출 2007-12-27 140 1488
30
 스틸맨
첫방문 인사드립니다  1 2007-12-18 160 1304
29
 프리즘/김인준
사진예술의 창조 2007-12-16 137 1378
28
 프리즘/김인준
미국내 인기 DSLR 판매 순위 (2007.4.15-2007.4.30) 2007-12-16 151 1667
27
 프리즘/김인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노을이 아름다운 9곳 2007-12-12 213 2185
26
 벤지
축하드립니다...  1 2007-12-11 165 1268
25
 우드정
새보금자리 오픈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 2007-12-10 128 1231
24
 장비/장인주
새단장 축하드립니다.  1 2007-12-10 138 1220
23
 이상득
축하합니다.  1 2007-12-08 126 1273
22
 아침나라/안영국
똑똑똑 !!! 안녕하세요 .  1 2007-12-08 132 1180
21
 초원의빛
새집 장만 축하드립니다. *^_^*  1 2007-12-08 138 1213
20
 서인수
홈피개설을 축하드립니다.  1 2007-12-08 186 1327
19
 프리즘/김인준
포토샵CS2 사용법 2007-12-07 223 1919
 프리즘/김인준
사진의 정체성 논란 2007-12-07 154 1416
17
 동현빠/임채휴
너무 멋진 홈입니다.  1 2007-12-07 157 1278
16
 노상권
축하드립니다^^  1 2007-12-06 135 1293
15
 프리즘/김인준
대기원국제사진대전 2007-12-06 130 1545
-목록보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DQ'Style 

 

이곳에 전시된 모든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됩니다. 저작권자와 협의 되지 않은 무단 사용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